특별전 국립경주박물관-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2015/09/30 05:35 by nautes3


2007年 以前 거제도에서 지표조사...2 2007/02/11 19:44 by nautes3

이곳에서 확인한 유물입니다. 신석기를 전공하지 않아서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습니다만, 신석기시대 중기로 편년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2007年 以前 거제도에서 지표조사...1 2007/02/11 19:08 by nautes3


거제도에서 시굴할 때 정보를 얻어서 간 곳입니다. 지표조사하면서 수습한 유물로 보아서 신석기시대 패총으로 생각됩니다. 절개된 면에서 유구와 같은 것이 확인되었습니다만, 성격은 알 수 없었습니다.

2007年 以前 후지노키 고분-3 2007/02/11 18:40 by nautes3

후지노키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 입니다.



2007年 以前 첫날 코스 - 영일 냉수리고분 2006/08/19 02:02 by nautes3

첫날은 영일 일대를 둘러보았습니다. 순서는 영일 냉수리고분-영일 냉수리비-칠포리 암각화군 입니다. 동해안루트로 올라가면서 보았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고고학 사전을 그대로,...



경상북도(慶尙北道) 포항시(浦港市) 신광면(神光面) 냉수리(冷水里) 일대에는 많은 신라 고분들이 분포하고 있다. 이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경주에서 안강을 거쳐 흥해방면으로 가는 도로 좌우의 해발 50∼100m인 야산의 능선과 정상부인데, 고분이 위치한 곳은 고대부터 중요한 교통로였던 안강방면에서 동해안으로 통하는 길목이다. 이것은 1966년에는 <晉率善穢伯長> 동인(銅印)이 주변의 흥곡리에서 발견되었고, 1989년에는 고분군 주변에서 중고기의 신라사를 연구하는데 빼 놓을 수 없는 냉수리 신라비(冷水里 新羅碑)가 발견되어 주목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고분들은 중앙의 계곡에 있는 용천저수지를 사이에 두고 냉수리에서 흥곡리(興谷里)에 걸쳐 분포하며 A, B, C 3개의 지구로 나누어진다. 냉수리 고분군은 3개 지구 가운데 A지구로 1990년과 1991년에 국립경주박물관과 경주문화재연구소에 의해서 발굴조사된 냉수리 돌방무덤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여기에서는 발굴조사된 고분을 포함하여 모두 7기의 봉토분이 확인된다. 대부분 도굴되고 파괴가 심하나 그 중의 1기(7호분)가 발굴조사되어 ‘냉수리 돌방무덤(冷水里 石室墳)’으로 명명되었다. 고분들의 봉토 크기는 대부분 저경이 10∼15m이나 1기(1호)는 봉토의 저경이 25m로 발굴된 7호분과 같은 대형이다. 도굴에 의해 드러난 고분의 경우 내부주체는 굴식돌방(橫穴式石室)이고, 그렇지 않은 것들도 모두 돌방무덤(石室墳)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고분군 가운데 냉수리 돌방무덤은 A지구 7호분으로 명명된 것으로 용천저수지의 동안에 위치하며, 도로 옆에 있다. 고분은 도로공사 중 일부가 파괴되어 1990∼91년 3차에 걸쳐 조사되었으며, 발굴조사된 돌방무덤을 중심으로, 주변 포항시 신광면 냉수리 산 78-3번지 일대 1,674㎡를 1994년 4월 16일 경상북도기념물 제95호로 지정하였다.

고분은 지금까지 조사된 한강 이남지역의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 가운데 최대형이며, 봉분은 높이 약 7m, 직경 25m로 무덤방(墓室)의 위와 주변에 2중으로 냇돌을 쌓고 다시 흙으로 쌓은 원분이었다. 봉분의 내부에는 널방(玄室), 옆방(側室), 널길(羨道), 바깥 둘레돌(護石)과 안쪽 둘레돌을 갖춘 굴식돌방무덤이 축조되어 있었다. 널방은 반지상식으로 길이, 너비, 높이가 6.1×3.5×2.9m정도이고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널방의 벽은 대부분 60∼120㎝의 대형 괴석을 부분적으로 다듬은 깬돌로 축조하였다. 남벽과 북벽은 거의 수직에 가깝게 쌓았으나 동벽과 서벽은 하부에서 위로 올라 갈수록 점차 내경되게 쌓았다. 널방의 위에는 3개의 거대한 괴석을 덮어 천정으로 하였다. 그리고 널방의 내부는 바닥 부분을 제외하고 전면에 걸쳐 회칠을 한 흔적이 있었다. 널방의 양 장벽인 동벽과 서벽에는 남벽쪽에 치우쳐 각각 1개의 벽감(壁龕)처럼 보이는 깊이 30㎝ 정도의 시설물이 있었다. 널방 바닥에는 자갈을 깔았으나 별도의 주검받침대(屍床臺)는 마련되지 않았다. 널방의 북서단벽 중앙에 널길을 달았고, 널방의 입구는 정교하게 가공한 문주석, 문지방석, 중방석으로 구성된 문시설을 하였다. 널길은 대형의 깬돌과 사람머리 크기의 돌을 혼용하여 축조하였는데, 그 크기는 6.55×1.4×1.8m로 입구에서 널방 쪽으로 가면서 약간 넓어진다. 널길의 끝은 냇돌을 이용하여 2중으로 폐쇄하였다.

널길에는 8매의 뚜껑돌을 덮어 천정으로 하였다. 널방 가까운 곳의 널길 우측에 옆방을 달았는데, 그 크기는 4.15×1.75×1.9m로 입구 쪽이 좁은 사다리꼴이었다. 옆방은 대형의 깬돌을 이용하여 쌓고 사이사이에 작은 깬돌로 틈을 메운 후 황색점토로 정면을 하였다. 이 무덤의 특징은 옆방이 달려 있는 특이한 구조와 봉토의 축조에 돌을 쌓은 점이다. 이것은 고구려 돌방무덤 평면구조의 특징과 경주지역 돌무지 봉토의 축조방식이 결합된 형태로 경주지역에 돌방무덤이 채용되는 과정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또 널길과 무덤길(墓道)의 조사에서 2차례 이상의 추가장을 한 흔적이 발견되는 등 당시의 장례풍습을 잘 보여준다.

널방은 도굴되었으나 금은제반지(金銀製指環), 은제허리띠(銀製과帶), 세고리장식(三累環頭飾), 은제고리 등의 화려한 유물들과 400여 점에 이르는 다량의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로 보면 이 고분은 6세기 전반경에 축조되어 7세기초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B, C지구로 구분된 흥곡리 일대에도 많은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과 굴식돌방무덤이 혼재하며 분포하고 있는데, 봉토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돌방무덤만해도 지금까지 확인된 것이 B지구의 52기와 C지구 23기 등 모두 75기에 달한다. 이들은 봉토의 크기가 대략 10m 내외이나 큰 것은 30m(C-23호분)에 달하는 것도 있다. 도굴로 인해 내부구조를 관찰할 수 있는 것은 발굴된 냉수리 돌방무덤(冷水里 石室墳)과 같이 옆방(側室)이 널길(羨道) 우측에 달렸으나 널길이 우편재한 것, 옆방이 널방(玄室)의 입구측 우측에 달리고 널길이 우편재한 것(B-36호분, C-23호분), 옆방 없이 널길이 우편재한 것(B-43, 52호분) 등 다양하다.

이 가운데 비교적 규모가 크고 내부구조를 관찰할 수 있는 것은 C-23호분이다. C-23호분의 널방(玄室)의 평면형태는 종장방형이고, 천정은 대형의 석재 5매를 덮은 평천정이다. 널방의 좌우측벽과 후벽은 괴석으로, 전벽은 장대석상의 석재로 쌓았는데, 좌우측벽은 면을 고르게 하여 위로 올라가며 안쪽으로 졸아들게 하였으나 전후벽은 수직으로 쌓았다. 좌우측벽에는 석회를 전면에 바른 흔적이 남아 있다. 널방의 크기는 8×3.8×3m이다. 방문은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사다리꼴 모양으로 크기는 하부 1.4m, 상부 1m의 너비이고 높이는 1.5m 이다. 널길(羨道)은 널방의 전벽에서 좌측에 동향으로 뻗어 있고 양 벽을 깬돌로 축조하였다. 널길의 길이, 너비는 3×1.1m이다. 4내의 천정석이 남아 있으며, 옆방(側室)은 널방의 우벽에 직각으로 설치되어 있다. 입구의 좌우에는 장방형 석재를 각각 1매씩 세웠고, 그 위에 역시 장방형 석재를 얹었다. 벽석은 괴석으로 쌓았으며 전면에 석회를 발랐다. 천정은 평천정으로 4매의 뚜껑돌을 얹었다. 옆방의 크기는 4.1×1.5×1.9m 이다.

냉수리 고분군에서는 뚜껑, 굽다리목긴항아리, 뚜껑굽다리접시 등의 토기편들이 채집되고 있는데, 이들로 보아 고분들은 6세기대를 중심으로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이 고분군의 피장자들은 경주에서 동해안 방향으로 진출하는 길목에 자리잡은 세력집단의 지배자들로 보고있다.

  

2007年 以前 하계 휴가 기념 여행....--; 2006/08/18 22:10 by nautes3

이번에는 강원도와 전라도를 다녀 왔습니다. 이동시간이 길어서 얼마보지 못했지만, 빠른 시간 안에 올리겠습니다.

2007年 以前 특별강연회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2006/08/18 22:08 by nautes3

 

특별강연회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국립경주박물관은 문화관광부 및 경주시가 주관하는 “아시아 문화재 연구 네트워크 구축사업”과 관련하여 위탁연수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본 사업의 일환으로 참가한 동남아시아 문화재 관련 전공자들이 자국의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특별 강연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하오니,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1. 일시 : 2006년 8월 21일(월), 14:00~17:30

2. 장소 : 국립경주박물관 강당

3. 세부일정

- 14:00~15:00 / 태국 박물관의 역사 - 타나삭시리 다리카(Thanasaksiri Darika)

태국 칸차나피섹 국립박물관 큐레이터

- 15:00~16:00 / 태국 미술의 역사 - 우추웡 추폴(Uachoonwong Choopol)

태국 매파렁대학 강사

- 16:00~17:00 / 미얀마의 문화: 고고학 자료를 중심으로- 탄자우 (Than Zaw Oo)

미얀마 문화부 고고학국 연구원

- 17:00~17:30 / 질의응답


※ 세부일정은 사정에 따라 조정될 수 있습니다.




2007年 以前 단도마연토기입니다. 2006/06/09 00:15 by nautes3

무문토기시대(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 중 하나인 단도마연토기입니다.
1월에 김해 율하현장 답사갔다가 찍은 사진입니다. 아직 미보고라서 올려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감상만 부탁드립니다. 아, 현장이 매우 멋집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방문해보시길..



2007年 以前 무령왕릉 왕비관식... 2006/06/08 21:12 by nautes3

개인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어쩌면 보는 사람마다 그렇게 생각할지도- 무령왕릉의 왕비관식입니다.
느낌상 왕 관식은 조금 동적인 느낌인 반면에, 왕비관식은 고요하고 정적인 느낌이 듭니다. 중앙박물관에서 찍었습니다. 


2007年 以前 추정 석탄.... 2006/06/05 01:33 by nautes3

석탄... 화석 연료 석탄이 아니라, 적과의 전투시 던지는 석탄(石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일본에서는 석탄이라고 하네요.. 시굴 트렌치에서 나왔습니다. 바로 위에 삼국시대부터 사용된 산성이 있고, 조선시대 봉수도 있기 때문에 위에서 흘러 내려 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조선시대 봉수에 대한 기록 중 봉수대에서 갖춰야 할 물건 중 석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유물의 경우 크기가 야구공보다 작고 계란보다는 큽니다만, 더 큰 것은 머리만한 것도 있다고 합니다. 무게는 크기에 비해 꽤 묵직합니다. 맞으면 중상은 확실합니다. 뭐, 흘러 내려온 것이면 좋겠지만, 누군가에게 던진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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